Art/지식

프란시스코 고야 : 진실, 주관, 인간의 악함을 그대로 담아내다

세모아트 2020. 11. 28. 23:58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미술가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미술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입니다.

**모든 내용의 출처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비하인드미술가임을 알려드립니다!!

최근에 재발견된 작가인 프란시스코 고야.

스페인은 굉장히 오랫동안 이슬람 사람들이 점령이 되었던 곳으로(1492년까지) 이슬람 문화가 들어와있도 크리스트교 문명에 대한 동질감은 뒤늦게 생겼어요. 또한 농사에 적합한 땅이 아니라 사는 게 척박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스페인에서 태어난 고야는 화가가 되겠다 결심하는데.. 당시엔 미술학원-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시험을 본 다음 통과를 해야 정식 화가로 인정이 됐어요. 그는 2번 시험을 떨어진 후 심사위원에게 돈을 못 줘서 떨어진거라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시험을 통과해도 이탈리아로 유학갈 거, 내 돈으로 가서 공부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떠납니다. 이탈리아 작은 소도시에서 공부하다 더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스페인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스페인의 상황을 살펴보면 테피스트리가 유행했어요. 크게 세 가지 장점을 가졌는데 1)방풍이 돼서 보온효과가 있다는 점(스페인의 당시 건축이 좀...부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 2)방음효과 3)장식물로서의 효과입니다. 단점이 있다면 실이 비싸다는 거였죠.

테피스트리에 그린 고야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요. 작업이 들어오지 않자, 궁정화가로 성공한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을 한 다음 친구가 자신에게 작업을 주게 합니다. 그러다 친구 작업까지 뺏으려 했다는 게 들통나면서 결별하는 등 야망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테피스트리는 귀족들이 의뢰를 했는데 농민들의 모습을 희화화 하거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농민 모습을 담은 작품을 주문하곤 했습니다.

어쨌든 고야는 점점 인정을 받으면서 많은 귀족들의 주문을 받습니다.

그가 초기에 승승장구할 때에는 위와 같이 밝은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개인적인 일과 전세계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고야는 병에 걸려서 눈이 안 보이게 되는데 약 먹으며 나으려고 했더니 이젠 눈이 서서히 보이면서 귀가 멀어버립니다. (청력은 완전히 잃었다고 해요) 더불어 여럿의 자식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개인적인 일들도 괴로운데.. 1789년 고야가 마흔이 좀 넘었을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이것이 그에게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1808년 5월 3일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활개칠 때, 나폴레옹의 동생이 스페인을 다스리게 됩니다. 처음 스페인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자유, 평등과 같은 것을 가져왔다 생각해서 환영을 했으나 후엔 그에게 반발을 하고 이것이 학살로 돌아옵니다 :(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에도 공화정 국가를 세우겠다는 사람들, 왕정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 종교의 힘을 믿는 사람들로 나뉘어 스페인 자체가 굉장히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이때 마녀사냥, 학살이 많아 수많은 사람들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해보고 죽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고야는 종신 궁정화가로 뽑힌 뒤 작품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음껏 그리는 자유로움이 보입니다..!!

자신이 보는 현실을 그대로 담고 표현한 고야는 종신 화가였음에도 추방 당하고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주관을 담아 그림을 그리며 인간이 가진 악함, 어두움에 대한 것을 잘 표현한 화가인 고야. 개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기에 근래 들어서 프란시스코 고야는 주목을 받으며 모더니스트 화가라고 불립니다 :)

여기까지! 고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다음번엔 또다른 미술가 이야기를 공유하겠습니다♥️ 비하인드미술가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