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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오도르 제리코 : 낭만주의, 새로운 시도.
    Art/지식 2021. 2. 25. 23:57

    안녕하세요 세모아입니다 :) 이번에 소개해드릴 예술가는 바로 테오도르 제리코입니다.

     

    **모든 내용은 비하인드미술가가 출처임을 알려드리면서 시작할게요 :)

     

    요절한 프랑스 화가인 그를 사람들은 프랑스 최초의 낭만주의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잠깐 휴머니즘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요. 문화에서 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주의(인간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전엔 신중심으로 생각을 했다면 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그리고 테오도르 제리코를 프랑스 최초의 낭만주의자라고 말했는데, 이때 낭만주의는 딱딱한 고전주의와는 다르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정해져있는 틀이 아닌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게 특징이에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주변국들에게 혁명의 정신을 퍼뜨렸지만 (이성이 있는한 우리는 계속 발전한다, 민주주의) 결국 그들도 주변국에겐 새로운 통치와 억압일 뿐이었고...이것에 반발하며 함께 나타났던 게 낭만주의인거죠. 

    그럼 이제 그의 그림들을 보여드릴게요.

    그가 그린 그림들은 그전까지 나왔던 그림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난 건 아니였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고 그런 부분들이 동물 그림에서 크게 드러납니다. (또한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게 말이었고 해요.)

    굉장히 열심히 그렸던 동물그림을 본 뒤 경마장 그림을 소개해주십니다. (비하인드미술가 참 알찹니다 ㅎㅎ)

    더비 경마장(1823)

    제리코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갔을 때 더비 경마장에 가서 관람하며 말 그림을 그렸어요. 이 그림이 유명한데 그 이유가..! 과학적인 시각이 없을 때 얼마나 실패하는 그림이 되는지에 대한 예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사진으로 말이 달리고 있는 모습을 찍으면 발이 전부 공중에 띄워져있는 경우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제리코는 물론 당시 사람들도 이런 것을 몰랐다고 해요. 워낙 달리는 모습이 빨라서 잘 보이지도 않으니 말예요. 그래서 그의 그림 속 말들은 전부 공중에 발이 띄워져있다는 걸 볼 수 있어요. 

     

    제리코는 이탈리아로 갈 수 있는 상을 받으려고 시도했으나 자꾸 떨어져서 자기돈으로 로마에 가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로마에서 저명한 예술가인 다빈치도 말 그림을 그렸다더라~ 라는 걸 듣고선 꾸준히 동물 그림을 그렸고, 말 그림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동물그림말고도 다양한 그림을 그렸던 그. 제리코는 겉보기를 규정하는, 마음 속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좀 이상한 사람들이 귀신과 관련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는데 이젠 정신병이라는 것이 세간에 나옵니다. 광기에 대한 글을 읽고선 여기에 빠진 제리코. 그는 광인 시리즈를 열 점 남깁니다. (그중 다섯 점은 유실되었어요 ㅠㅠ) 

    도박에 미친 여인
    도둑질에 미친 남자
    질투에 미친 여인

    비하인드미술가에서는 남은 그림들 중 세 점을 공유했습니다. 의사가 광인들을 상담할 때 제리코가 옆에서 보면서 그린 그림들이라고 해요.

    다른 무언가에 빠져있는 듯한 시선. 인간 정신의 내면에 대한 문제, 상상의 생각을 그림으로 바꾸고 싶어했던 흔적이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는 그림은 바로 일생의 역작, 많이들 접해본 그림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부터 살펴보면 1816년, 프랑스 나폴레옹 제국이 몰락한 후 예전의 왕조를 부활시킵니다. 복고풍의 정책들이 시행되던 때고 다른 국가들에게 수많은 배상금을 내고 식민지를 뱉었어요. 당시 문제가 있었는데 예전에 유능했던 사람들은 나폴레옹 시절에 다 죽었고 나폴레옹 시절에 유능했던 사람은 그 시기가 몰락하면서 다 죽었기에 새로 뽑은 신출내기거나 나폴레옹 전 시절에 못났던 사람밖에 안 남았다고 해요. 그래서 못난 사람들이 불려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메두사라는 군함을 이끄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임명된 함장은 이미 은퇴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군함엔 절반은 장교들, 절반은 일반 사병들이 탔는데 이렇게 장교들이 많이 탔던 건 싸우러가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의 예전 식민지를 되찾으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배가 이동하던 중, 기우뚱해서 침몰할 위기가 생깁니다... 유능한 함장이었다면 충분히 살렸을텐데 이 인물은 먼저 도망가버리고 심지어 장교들도 구명정을 쓰고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절반의 인원인 일반 사병들만 남습니다. 

    포도주와 딱딱한 빵과 함께 갑판을 뗏목같이 만들어 겨우 살아남은 일반 사병들. 그들은 당연히 구조를 올거라 기대했는데 구명선에 탔던 장교들이 구조되면서 산 사람은 없다고 말해버리는 바람에 구조가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지는데요. 나중에 구조대가 왔을 땐 10명만 생존했는데 그마저도 돌아오는 길에 지쳐서 3명만이 살아남았던 사건이에요. 

     

    이를 담은 책이 나왔는데 비인간적인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정부에서 막았고, 분노한 제리코는 그림으로 남깁니다.

    굉장히 격렬하게 표현된 그림. 이 그림이 전시가 됐었을 때 프랑스 정부에서 막았기에 전시를 하기 위해 영국으로 넘어갈 정도였어요. 정치색이 섞이면서 많은 비난과 탄압을 받으니 당연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제리코는 그림 그리는 일을 잠깐 쉬며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다치는 바람에 요절하게 되었다고 해요 :(.. 

     

    만약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후배이자 친구였던 들라크루아와 함께 낭만주의의 엄청난 획을 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과 함께 제리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게요. 

     

    다음 예술가 이야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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