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폰스 무하 : 크리스마스의 기적부터 국가에 바치는 헌사까지Art/지식 2020. 10. 4. 17:04
안녕하세요 세모아입니다 :) 알폰스 무하, 들어보셨나요? 이름은 처음 들어도 작품을 보시면 알 수도 있고 계속해서 국내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라 많이들 아실 것 같아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알폰스 무하의 크리스마스 기적부터 국가에 바치는 헌사까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알폰스 무하(1860-1939)는 체코 출신으로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19세기 후반, 인상파와 점묘법, 입체파와 같이 새로운 시도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을 때 아르누보는 조금 다른 길을 걷습니다. 아르누보는 상징파와 비슷하게 가면서도 좀 더 현실과 가깝고 상업적인 면이 있다고 보면 되는데요. 건물의 장식이나 보석 가공, 나무 덩쿨, 꽃잎과 같은 자연을 그리는 것 등 굉장히 화려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무하가 첫 번째로 두각을 나타낸 건 바로 ‘포스터’입니다. 포스터로 유명해진 뒤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포스터를 원했는데..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됐을까요?
그는 어렸을 때 음악을 했으나 변성기로 목소리가 망가져서 성가대에서 나옵니다. 그후 프라하 미술학교에 가고싶어 했으나 재능이 없다고 떨어집니다 :( 다행히 귀족의 눈에 들어가 후원을 받게 되면서 유학도 가고 파리로 가는데요! 나중엔 후원이 끊기면서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는 인쇄소에서 서브로 일을 하는데 드디어..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납니다.50대의 나이, 당시 프랑스의 국민배우였단 사라 베르나르는 1894년 그해 연극이 초반에 성공하지 못하자 고쳐서라도 연극을 새로 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당시 연극은 9월에 시작하면 한 달 공연을 한 뒤 연말에 또 공연을 하고 봄 공연으로 마친 다음 바캉스를 보내면서 9월에 다시 시작할 가을 시즌을 준비하는 방식이었어요. 12월 말에 바뀐 연극에 맞춰 새로운 포스터가 필요했는데 크리스마스 휴가로 대체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연휴에도 나와서 일하던 무하가 바로 그 사람이 되었고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포스터는 길에 붙여놓으면 사람들이 다 떼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
그 첫 번째 포스터가 바로 위 이미지인 지스몽다입니다. 이 포스터 이후 무하가 마음에 든 사라 베르나르는 그녀의 연극 포스터를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으며 베르나르의 연극은 해마다 집중을 받고 성공의 길을 달리게 됩니다.
이런 알폰스 무하를 다른 사람들이 그냥 놔뒀을 리가 없죠. 수많은 기업들이 그에게 집중합니다.많은 기업에서 그를 찾았는데 특히 럭셔리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해볼게요.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그림들..! 무하가 그린 그림들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요 :) 실제로 한국에서 했던 무하 전시회를 두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좋았고 디테일이 최고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무하 전이 있다면 꼭 가보길 추천드리고 저는 코로나 끝나면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엔 인테리어와 건축에도 손을 대는 무하. 벨기에와 프랑스에 가면 그가 직접 장식한 방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의 그림이 이것에서 살아난 느낌이에요.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는 그의 조각도 있습니다. 예술가들 중 이렇게 여러 가지 작품을 하시는 분들 보면..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자신만의 분위기를 제대로 만든 예술가입니다.
이렇게 큰 성공을 거뒀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건 고향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애국심을 가지고 국가에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바로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에요.큰 사이즈의 연작이고 나중에 이 작품들을 직접 보는 게 소원이에요...! 상업적인 작품들은 직접 봤지만 이렇게 국가를 위한 열정을 가지고 그린 그림들을 인터넷으로만 봤기에 나중에 꼭!! 보러 갈 예정입니다.
이렇게 알려드린 <슬라브 서사시>는 완성 이후 1928년 모든 작품들이 조국에 기증이 되었어요.무하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덧붙이자면, 프라하를 침공한 나치는 <슬라브 서사시>가 담고 있는 민족주의가 그들의 신념에 거슬렸기 때문에 알폰스 무하를 심문했어요. 지난해에 앓았던 폐렴과 나치의 심문은 이미 고령인 그에게 죽음을 불러들였고 1939년 7월,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한 시대의 양식을 선도하고 뜨거운 애국심을 가슴에 품었던 알폰스 무하. 나치의 감시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인파가 모였었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예술가로 남았습니다 :)
다음번엔 또다른 예술가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슬라브 서사시를 제외한 정보의 출처는 비하인드미술가입니다!'Art > 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로드 모네 : 욕먹으면서 유명해진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0) 2020.10.22 에두아르 마네 : 최초의 모더니스트 (0) 2020.10.08 질문하는 미술관 : 예술작품과 사회문제를 함께 보다 (2) 2020.10.02 에곤 쉴레 : 요절한 천재의 나르시시즘과 누드화 (0) 2020.09.24 도미니크 앵그르 : 아름다운 여성의 누드란. (0) 2020.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