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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곤 쉴레 : 요절한 천재의 나르시시즘과 누드화
    Art/지식 2020. 9. 24. 09:52

    안녕하세요 세모아입니다! :) 이번 포스팅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작가이면서 비엔나 출신인 에곤 쉴레(1890-1918)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클림트와 같은 시대에 있었던 예술가로 어린 나이에 클림트에게 인정을 받은 천재이며 스물 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을 보여드리기 전에 유명한 사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에곤 쉴레는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동네에 떠도는 소녀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수많은 누드화를 그렸고 이걸 본 옆집 이웃이 뭔가 이상하다 느껴 신고를 한겁니다. 소녀들이 다녀간 흔적과 누드화를 보고선 재판을 받은 뒤 유죄로 갇히게 되는데요. 모든 그림들을 처벌하는 건 아니고 대표작 중 하나를 태우는 것으로 합의를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말이 많다 하던데 안현배 선생님(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시는 분)이 보시기엔 현명한 판단이었고 저도 공감됐어요. 지금 정서에서도 떠돌아다니는 어린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누드화를 그린다..? 사실 말이 안 되잖아요.

    자화상

    또한 그는 실제로 모델들과의 관계가 있었으며 지독할 정도의 나르시스트라고 합니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자화상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참 그리고 이런 에곤 쉴레의 이야기를 영화로도 보실 수 있어요. 다음번엔 영화 리뷰를 가져올 예정인데 먼저 말씀드리면 영화 속 주인공은 굉장히 잘생겼습니다. 네. 엄청 잘생겼어요. 사실 영화에서 이런 에곤 쉴레의 나르시시즘+도덕적인 룰을 신경쓰지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과 부인 에디트와의 사랑에 대해 미화했다 느꼈어요. 자기밖에 모르는 못된 사람인데 잘생기고 그 못됨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어찌되었든 영화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에 더 이어가겠습니다 :)

    그의 배경을 살펴볼까요. 아버지께서 철도 기술자로 비엔나에 정착했고 집도 경제적으로 넉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독 후유증으로 사망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비엔나는 성적으로 문란함의 상징이라는 파리가 형님이라고 할 정도라고 비유를 해주셨는데요. 당시 제국이 분리되면서 전과 같아질 수 없어진 혼란한 시기라 향락주의, 허무주의가 팽배하던 때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에곤 쉴레의 아버지께서 다른 이유가 아닌 매독으로 사망하게 된 거겠죠..:(

    감옥문

    다시 그의 작품으로 돌아가볼게요. 위 작품은 소녀들을 그리다가 감옥에 있었을 때 그렸던 그림인 감옥문입니다. 에곤 쉴레뿐만 아니라 당시 비엔나의 사회분위기는 성적으로 있어 열려있으며 그는 성으로 예술의 본질을 다뤄보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이중자화상

    이중자화상은 자신의 두 가지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선만 보고도 ‘에곤 쉴레구나’라고 알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엎드려있는 누드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나온 것처럼 선으로 하는 섬세한 표현이 나타나고 본능적으로 느껴서 바로 종이로 옮겨놓은 선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묘한 분위기와 선적인 느낌이 최고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에요. 20세기 초 작품인 그의 그림들은 감각적이며 모델이 가진 매력과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것만 같아요 :)

    아직 어린 소녀들을 그리면서 생긴 일들에 대해 ‘예술가는 이래도 괜찮지’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그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걸까요. 안현배 선생님과 같은 생각인 저 또한 재능과 그림이 뛰어난 것은 주목받고 찬사받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부분은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의 에곤 쉴레가 자신의 집에 데려온 소녀들의 누드화를 그리고 그러한 모델들과 관계도 있었다면...수용될 수 없는 건 1900년대보다 더할테니까요.

    그중 발리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모델, 동시에 성적인 파트너인 여성이 있었는데 4년간의 긴 관계를 가지다가 양갓집 규수인 에디트라는 여성과 결혼 후 단란하게 살아갑니다. 발리의 끝은 좋지 않았고요. 에곤 쉴레의 모델을 했던 여성들은 마치 내 영혼이 분석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누드화를 그릴 때 모델이 거울 앞에 서게 한 다음 쉴레늨 뒤에서 그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모델이 더 과감해지길 바랐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모델의 감정은 우리도 그림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강 위의 집

    그는 인물화에만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건축, 엔지니어 분야에도 남달랐는데 위 작품이 그러한 재능을 보여주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선이 가진 독특한 느낌과 색감이 눈에 띄는 작품이에요. 아카데미에서 배운 게 아닌 독학을 한 에곤 쉴레의 그림이죠 !

    가족

    마지막 작품입니다. 1차세계대전에 오스트리아도 참전했으며 막바지에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게 됩니다. 임신을 하고 있었던 에디트는 독감으로 사망하고 에곤 쉴레 또한 아내를 간호하다 얻은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가족>은 아내가 임신했을 때 그린 그림으로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살았던 쉴레도 아이와 함께 하는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에요.

    이렇게 에곤 쉴레라는 예술가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출처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비하인드미술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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